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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론 - 선택 ; 윤성문 동강병원장
언론사 울산신문 작성일 2007-12-18 조회 6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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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택


 21세기의 시작을 축하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007년의 끝머리에 서 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세상은 저만큼 앞서 나가있는 것 같다. 허허벌판이던 곳에는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화폐의 모양도 바뀌었다. 고치지 못하던 병을 고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병이 생겨났다.
 인류 역사를 바꾼 세계의 10대 발명품은 나침반, 총, 금속활자, 금속 활판, 기계식 계산기, 베이글, 전구, 트랜지스터, 인공위성, 복제양 돌리라고 한다. 별빛으로 방향을 가늠하던 시대를 벗어나 더욱 공격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강한 무기로 스스로를 방어하게 되면서, 기록해야 할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진보의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세상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인간에게 아무런 환상도 남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도 든다.

 인문학자인 도정일 선생과, 과학자인 최재천 선생은 '대담'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두려움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침반이 발명된 지 1000년이 지났지만, 인류는 때때로 길을 잃는다. 미래 세계를 그린 영화를 보면, 우리 후손들이 어떤 세상을 헤쳐 나가게 될지 암담할 때가 많다.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고, 처참하게 파괴된 지구의 환경 속에서 사람은 다시 원시인이 되는 어두운 상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보의 편리함을 만끽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갈지를 두려워한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때로는 차가운 기계에 둘러싸인 채, 가족과 격리되어 외로운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마지막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받는다. 의료 기술의 진보로 생명 연장 기술은 더욱 발달하였지만, 새롭게 생긴 '가능성' 때문에 '죽음'은 더욱 더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요즘 네덜란드에서는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존엄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도 한다.

 도정일 선생은 책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좋은 삶'이지 '행복 그 자체'는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행복을 위해 바른 선택을 포기하면 '좋은 삶'은 망가지고, '행복'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생명 공학 기술이 제시하는 '통증 없는 세계'가 인간의 삶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나 선택의 문제에 대한 고통을 낫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행복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된다. 기술이 모든 고통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영화에서, 어느 젊은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죽음에 따른 커다란 슬픔을 이기지 못해서 그 아이의 유전자로 만들어 낸 로봇 아이를 구입하게 된다. 그러나 그 로봇 아이 또한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고, 질투를 느끼는 '어린 아이'일 뿐이라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했고, 결국 예기치 못한 사고들이 이어진다. 결국 이 어머니는 '나의 아이'로 동일화되지 못한 로봇을 산 속에 버리고 온다. 유전자를 이용하여 삶을 영속시킬 수 있어도 죽음과 병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이 계획하면 신이 웃는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운명과 생로병사의 비밀에 아무리 꼼꼼히 대처하더라도, 삶은 항상 인간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의 호기심은 아직 수없이 많이 남은 인간의 문제를 탐구할 것이다. 그리고 해결한 수만큼의 새로운 문제가 우리 앞에 더 놓이게 될 것이다.

 2008년에는 또 어떤 놀라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억해야 될 것은 '행복 그 자체'를 위해 나쁜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은 '행복'으로 향하기 위해 우리가 택하는 길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윤성문 동강병원장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병원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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